[심층인터뷰] 이미연 보은상무 감독, 최초와 유일의 10년

201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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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저렇게 지면 쪽팔려서라도 관두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아프다. 

그래도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여자축구를 하고 있는 선수들한테 조금이라도 본보기 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나.”


이미연(42) 감독이 상무여자축구단(현 보은상무)을 맡은 지 올해로 10년 차. 이 감독은 한국에서 여자실업축구팀 감독을 맡은 최초의 여성 지도자였고, 지금까지도 WK리그의 유일한 여성 감독이다.

 2007년 코치로서 팀 창단을 함께한 이 감독은 2008년부터 감독을 맡아 팀을 이끌어오고 있다.


상무여자축구단과 함께한 꼬박 10년의 세월은 다사다난했고, 곳곳에 눈물과 설움도 배어있었다. 

그럼에도 이 감독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되고자하는 바람 때문이다.


상무 특성상 다른 팀에 비해 우수 선수 영입이 힘들고 외국인 선수 영입도 불가능하지만, 그래서 만년 꼴찌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 한 단계씩 발전해가는 끈끈한 팀을 만들어가는 것이 이 감독의 목표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언제나 외롭고 무겁지만, 이 감독은 오늘도 국군체육부대(경북 문경)로의 출근길에 “감사합니다”를 되뇐다.


-WK리그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보다 1승이 빨라 보다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작년에는 6월에 첫 승을 했다(6월 20일 구미스포츠토토전). 올해는 개막전에서 신생팀인 경주한수원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 신생팀이라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첫 경기라 부담도 있었고, 몸도 무거웠지만 선수들이 잘 이겨냈다.


-지난해에는 1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공식적으로는 5승을 목표로 잡고 있다. 그런데 선수들이 10승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 왜냐고 물어봤더니 경주한수원한테는 4승을 얻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더라. 

그래서 “6승은?” 그랬더니, 다른 팀들도 한 번씩은 다 잡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더라. 작년에 부진했던 것 때문에 선수들이 더 의지를 갖고 있다. 

우리 전력상 플레이오프 진출(3위)까지는 힘들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지난해 구미스포츠토토는 10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내부적으로는 선수들과 소통을 통해 10승을 목표로 정했다. 

무엇보다 한 단계씩 발전하는 모습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작년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상무여자축구단이 올해로 창단 10년을 맞았다. 소회가 어떤가?

지난 3월 9일이 꼭 10년 되던 날이었다. 선수단 다 같이 조그맣게 축하 파티도 했다. 벌써 10년이나 됐다니 놀랍다. 부끄럽지만 내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웃음). 

우여곡절도 많았고 여전히 부족한 것도 많지만, 이렇게 10년을 이끌어온 내 자신을 그때만큼은 칭찬해주고 싶었다. 군팀이라 생기는 문제들이 많았다. 선수들이 입단을 기피하기도 했고, 

재작년에 드래프트 문제가 대두되면서 체육부대 이미지를 실추하기도 했다. 체육부대가 여자축구를 비롯한 엘리트 스포츠에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드래프트에 참여함으로 인해서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졌다. (2015년 12월 선수선발세칙 개정 전까지, 상무의 지명을 받은 선수는 자동적으로 육군 부사관으로서 3년간의 복무를 했다. 

선수선발세칙 개정 후, 2016 드래프트부터 상무는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게 됐고, 한국여자축구연맹에 상무 입단을 희망하는 별도의 지원서를 제출한 선수에 한해 

드래프트 전후에 자체 협상을 거쳐 선수 선발을 할 수 있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부산과의 연고마저 끊기면서 팀이 해체 위기까지 갔었다. 다행히 체육부대와 한국여자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팀을 존속시킬 수 있었다. 

선수선발제도를 바로잡고 보은과 새로 연고 협약을 하면서 이제는 팀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도 그런 불안한 상황 속에서 시즌을 맞았던 게 하나의 원인이었다. 

올해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맞았다. 이제는 우리팀을 원해서 온 선수들만 남았다. 물론 예전보다 대표급의 우수한 선수들이 들어올 확률은 줄어들었지만, 

우리가 하고자하는 열정과 목표를 가지고 뭉친다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3년의 과도기가 지나면 지금보다 더 끈끈하고 힘 있는 팀이 될 것이다.


-상무 입단 희망자가 예상보다 많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15명 정도가 지원했다.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아 놀랐다. 지원자들을 보니 체육부대에 훈련을 왔다간 선수들이 많더라. 체육부대의 좋은 시설과 환경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지원한 거다. 

장기복무자가 되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점도 선수들에게 큰 메리트로 작용하는 것 같다. 특히 부모님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수요가 상무 지원으로 이어지는 거다. 

현재 20명의 선수가 있는데 6명이 장기복무자다. 나머지 선수들도 다들 장기복무를 희망하고 있다. 처음에는 원치 않다가도 와서 생활해보면서 좋은 점들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선수가 권하늘이다. 

하늘이도 처음에는 울면서 들어왔다(웃음). 이제는 본인도, 부모님도 굉장히 만족해한다. 하늘이는 초고속 중사 진급에 초고속으로 장기복무자가 된 케이스다. 그만큼 노력을 많이 했다. 

진로가 결정된 이후에는 축구를 더 편하게 하는 것 같다. 우리 팀의 롤모델이다. 은퇴 후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하고 있다.


-10년째 유일한 여자실업축구팀 여성 감독이다. 외로움은 없나?

처음에는 30대 초반 여자 감독이라고 하니, ‘2~3년이면 나자빠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더라. 처음에는 팀에서도 당연히 남자 감독을 찾았다. 

그런데 부대장님 참모분들이 ‘여자축구인데, 여자라고 (감독을) 못하라는 법이 있냐’며 나를 추천했다고 한다. 그렇게 여자실업팀 최초의 여자 감독이 나왔다. 

다른 기업팀들이 지금까지도 못한 일을 체육부대가 한 거다. 그런 면에서 체육부대에 정말 감사하다. 


물론 외로움도 있다. 다른 팀 감독님들과 잘 지내긴 하지만 좀 더 편하게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기는 어렵다. 같은 감독 위치일지라도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벽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황인선 경주한수원 코치와 김은숙 인천현대제철 코치가 베스트프렌드다. 그 친구들이 많이 힘이 됐다. 10년 동안 눈물도 많이 흘렸는데, 지금은 나름대로 독해진 것 같다. 

경험을 통해서 내 스스로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힘이 생겼다. 


-이 감독 이후에 또 다른 여성 감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물론 여성 지도자들이 가진 장점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남자 지도자들이 가진 축구를 보는 눈이나 코칭 능력의 수준이 여성 지도자들보다 높다고 본다. 기본적으로는 풀의 차이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에 P급 지도자가 120명이 있는데, 그 중 여성 지도자는 나를 포함해 4명이다. (이미연 감독은 2009년, 여성으로서는 아시아 최초로 P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점점 늘어나야하는데 쉽지는 않다. P급 코스의 경우 100명 지원을 받아 서류심사를 하다보면 비교적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여성 지도자들이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 

그래도 대한축구협회가 여성 지도자 육성에 정책적으로 관심 갖고 있기 때문에 확률은 적더라도 꾸준히 여성 지도자가 나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재작년에 여성 지도자들만을 대상으로 C급 코스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여성 지도자들이 남자 지도자들 틈에서 지도자 코스를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여성 지도자들에게 따로 기회를 열어준다는 면에서 필요성이 크다. 올해도 준비 중인데,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서 더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배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면에서 내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연 감독은 한국 최초의 여성 지도자강사다.)

-미국, 독일 등 축구 강국 중에는 여자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여성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환경을 보면 부럽다. 우리나라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국가대표팀을 여성 감독이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령별 대표팀부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서 A대표팀을 맡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대표팀 코치로 일하고 있는 여성 지도자들, 그리고 일선 지도자들 중에서 인성과 능력, 자질을 갖춘 지도자들 선별해 장기적 플랜 짜서 꾸준히 성장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는 대표급 선수들도 많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자라나는 어린 여자축구선수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선수나 지도자가 늘어나면 자연히 여자축구 저변도 넓어질 것이다.


-남자팀을 맡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개인적으로 목표를 이곳 상무에서 정년까지 하는 것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웃음) 남자팀을 맡아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아직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목표가 크기 때문에 남자팀 감독을 맡는 것은 후배들이 해줬으면 좋겠다. 요새 보면 초중고 남자팀에서 여성 골키퍼 코치를 많이 원하더라.

 초등학교 필드 지도자로도 여성 지도자에 대한 수요가 꽤 있다. 이렇게 가면 앞으로는 여성 지도자들이 남자팀을 맡을 기회가 더 생길 거라 생각한다. 

홍콩에서 남자 프로팀을 이끌고 있는 찬유엔팅 감독(이스턴스포츠클럽, 세계 최초로 남자 프로팀을 이끌고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한 여성 감독)이 있지 않나. 

정말 대단하다. 한국에서도 그런 여성 지도자가 나오길 바란다.


-선수로 활약하던 1990년대와 비교해 지금의 여자축구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많이 발전했다. 내 세대를 보통 한국여자축구 1.5세대라 부르는데, 1세대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때는 경기를 하면서 볼을 걷어내기 바빴다. 대표팀에서조차 오로지 뛰는 걸로 축구를 했다. 

지금은 모든 것들이 체계화 됐다. 체력을 바탕으로 해서 전문적인 기술과 팀플레이, 경기운영능력 등이 많이 성장했다. 당시에는 여자실업팀이 현대제철 한 팀 뿐이었는데, 이제는 실업팀이 8개다. 

여자실업팀이 늘어난 만큼 그 밑의 저변도 늘어났다면 좋겠지만, 여자축구팀이 조금씩 없어지는 추세라 안타깝다. 열악한 저변에서도 이만큼의 발전을 이뤄낸 것은 고무적이다. 

1990년대에는 일본, 중국, 북한 등과 A매치를 하면 기본 세네 골씩 먹고 왔다. 미국한테는 0-5, 0-7 이랬다. 미국을 상대로 한 번 골을 넣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국 신문에도 나왔다. 

(이미연 감독은 1997년 미국 세인트찰스에서 열린 친선전에서 45미터 프리킥 골을 넣었다. 결과는 1-6 패.)


이제는 격차가 많이 줄었다. 지소연을 비롯해 우리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해서 활약을 펼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현재 대표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한국여자축구의 황금세대라 불린다. 

현장에서는 이 선수들이 은퇴하고 나면 한국여자축구의 암흑기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 대표팀이 평양에 가서 너무나 잘 해주고 돌아왔다. 

만약 이번에 아시안컵 본선에 못나가게 됐다면 우려가 현실로 피부 가까이 와 닿았을 것이다. 고비를 잘 넘겼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를 너무 냉혹하게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희망이 있다. 계속해서 꿈을 꾸고 이뤄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


문경=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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